한비야는 이름만으로도 베스트셀러감이다. 그녀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은 다른 저작에 기어코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2005년 말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를 처음 읽었던 필자 또한 이후 《중국견문록》 등의 저작을 모조리 찾아 읽었다. 그녀의 책은 도전하는 삶을 동경하거나 올바른 삶의 가치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은 젊은이에게는 필수서적과 같다.

3년여 간 이렇다 할 책을 내지 않던 그녀가 최근 《그건, 사랑이었네》란 에세이를 발간했다. 이전 작품이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활동을 담았기에, 연장선상의 이야기가 더 많이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많은 일간지의 한 장에 불과한 짧은 국제면 기사만으로 전 세계 각지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알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재난과 분쟁 현장 등 위험한 곳의 숨은 이야기들을 알기는 더 어렵다. 그래서 한비야의 책은 전 세계의 기아와 고통, 세계시민의 일원으로서 알아야 할 값진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선생님도 되어준다.


이번 책에서는 그녀가 일기를 쓰듯 써내려간 소소한 일상과 감정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하고픈 조언들이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이미 MBC '무릎팍도사’에서 들은 이야기들도 많이 담겨 있어 마치 재방송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세가 넘은 그녀의 구호활동가로서의 인생은 그 자체로 감동을 주고, 책의 뒤편에 실린 구호현장 리포트는 가슴을 아프게 혹은 뛰게 만들었다.

한비야는 자신이 월드비전에 들어간 해부터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리카 대기근, 쓰나미에 파키스탄 지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대형 재난이 터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재난과 위험 지역에는 어김없이 그녀가 있었다. 그녀가 전하는 구호현장에서의 이야기 속에서 지금까지 잘 알지 못했지만 꼭 알아야 하는 인간의 처참한 상황을 목격할 수 있게 된다.

2005년 10월 그녀가 긴급 구호활동을 펼친 파키스탄은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쑥대밭으로 변한 상황이었다. 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발라코트 근처에서는 주검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도시 전체의 콘크리트 건물들은 모두 빈대떡처럼 폭삭 내려앉았다. 그녀는 6백여 명의 여자 아이들이 수업을 받다가 고스란히 묻혀버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학교 터도 보았다. 여진 때문에 산악지대에는 인도적인 구호조차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희망을 찾기란 힘들었다.

2007년 9월부터 4개월 간 그녀가 파견근무 한 짐바브웨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재자의 해악이었다. 무가베 정부가 물가 안정 대책 일환이라며 실제 거래 가격의 5분의 1 선에서 물가를 동결하는 바람에 시장은 텅 비었고, 거래는 모두 블랙마켓에서 이루어져 물가가 천정부지로 솟았다. 짐바브웨는 수년간 계속된 가뭄과 정치 불안, 물가 폭등 등의 재난까지 겹쳐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기아에 허덕였다. 한비야는 “한 사람의 독재자가 국민들을 얼마나 못살게 굴 수 있는지, 어떻게 나라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끼치는 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소름 끼치도록 끔찍하고 숨 막힐 정도로 절박한 곳”이라 말하는 아프리카 남부 수단. 2008년 10월 그녀가 찾아갔을 때 남부 수단은 극심한 식수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식수가 없어 동물이 똥오줌을 누는 오염된 노천의 물을 마실 수밖에 없다. 물 자체 뿐만 아니라 물 긷는 데 걸리는 시간도 문제다. 여자 아이들이 왕복 대여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걸어 물을 길어 오는 도중 성폭행까지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곳 아이들은 단지 물 때문에 기생충이 살갗을 뚫고 나오고, 눈이 멀거나 성폭행을 당하거나 수인성 질병에 걸려 죽는다.

마지막은 '할례’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가 할례 피해자들을 위한 보건 의료와 교육 사업을 위해 떠난 소말리아에서 접한 할례의 실체는 충격 그 이상이었다. 여성 할례는 여성의 외부 성기를 잘라내 성적 쾌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남성 우월주의에서 비롯된 신체 훼손 전통이다. 문제는 여성 할례가 특정 지역의 특이한 전통이 아닌 대단히 일반적인 관습이라는 점이다. 15초마다 한 명, 하루에 6천여 명, 한 해에 무려 3백만여 명의 8세에서 10세 사이의 어린 꼬마들이 할례를 받는다.

이 순간에도 전 세계 1억 5천여 명의 여성들이 할례 후유증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지만, 그녀들은 절대 이런 얘기를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이것은 준엄한 전통이고, 고통은 전통을 위해 개인이 감수할 운명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한비야는 “아프리카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전쟁, 굶주림, 에이즈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런 고통의 밑바닥에는 차마 드러내어 말하지 못하지만 이들의 삶을 뿌리째 흔드는 할례라는 괴물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힘들고, 어렵고, 처참한 재난 현장에서 한비야는 구호팀장으로서의 헌신적인 노력을 보였다. 파키스탄 대지진에서는 의료팀과 함께 9일 밤낮을 여진의 공포, 거친 음식과 추운 잠자리 등을 견디며 115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그녀가 먹인 옥수수 가루와 콩가루를 섞은 영양죽은 수단의 아이들을 살렸다. 할례의 피해자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다히로는 손을 잡으며 함께 가슴 아파해주고 울어주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미소를 보냈다. 현지 통역자는 다히로가 이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을 처음 본다고 했다. 한비야는 그녀만의 애정과 헌신으로 전 세계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돌보아 주었다.

전 세계인을 가슴에 품고 사는 그녀의 삶은 특별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 또한 평범한 사람이라는 듯 다소 부끄러운 첫사랑 이야기도 들려주고, 자신도 가끔은 무기력증에 빠질 때도, 조용한 위로도 받고 싶을 때도 있다고 말한다. 그래도 50대에 세상을 누비고 사람과 함께 하는 그녀가 대단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특별한 그녀에게 길을 묻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녀는 한마디로 말한다. 젊은이들이여, 세계 시민이 되어라. 그녀는 세계시민을 “세계를 내 무대라고, 세상 사람들을 공동 운명체이자 친구라고 여기며 세계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며, 진정한 글로벌 리더가 되려면 먼저 세계 시민이 되라고 조언한다. 더불어 눈부신 젊음의 특권을 누리라고 말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도전, 무모하리만치 크고 높은 꿈과 뜨거운 열정을 쏟아 부으라고 말이다. 바로 세계를 위한 일에 말이다.

한비야는 최근 월드비전을 그만두고 유학길에 올랐다. 긴급구호팀 단장이라는 승진도 버리고 또다시 도전과 모험을 시작한 것이다. 이유는 구호를 더 잘하기 위해서란다. 구호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에 접목시킬 수 있는 구호 이론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당면 목표다. 언젠가 그녀는 현장의 경험까지 더해져 사람들의 빈곤과 재난을 해결할 근원적인 처방과 방법론을 들고 올 것이다.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에 비견할 그녀의 구호개발 서적이 기다려진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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