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지인(知人)이 GM대우의 신형차 구매를 결정했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이 GM대우차가 좀 위험하지 않겠냐며 걱정을 쏟아냈다. 당시 GM은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국가 구제를 받는 등 위기를 겪고 있을 때였다. 이대로 GM이 무너지면 GM대우가 받는 타격 또한 클 수 있었다. 하지만 GM은 당초 60-90일 걸릴 것이라던 파산보호 기간을 40일로 단축시키며, 지난 10일 '뉴GM'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GM의 회생이 지인의 차 선택에 큰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GM은 경영위기 이후 혁신적이면서도 강도 높은 자구계획으로 회생의 가능성을 고객들에게 심어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노조의 결단과 노사 합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GM의 몰락에는 주력시장인 미국에서의 판매가 급감한 원인이 컸지만, 노조의 과도한 경영참여와 복지혜택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이러한 위기의식을 GM노조와 상급단체인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적극 공감한 것이다.
GM노조는 직원 35%를 감원하고 16개 공장을 폐쇄 또는 가동 중단하는 구조조정을 받아들였다. 또한 비록 신규 채용자로 한정했지만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을 현재의 절반인 14달러로 낮추기로 했다. 급여동결, 상여금 지급 중단, 휴가 축소, 퇴직자 의료지원 혜택 축소 등 노조의 급여 및 복지 축소를 골자로 한 근로계약 수정안에도 적극 합의했다. GM노조의 상급단체인 전미자동차노조(UAW) 또한 2015년까지 GM과 크라이슬러에서 파업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희생을 동반한 노력이 있었기에 미 정부가 자금 지원을 결정했고, 파산보호 조기졸업도 가능했다.
뉴GM의 행보는 현재 노사 간 전면 대치상황에서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쌍용차는 국제 금융위기 속에서 판매 부진과 수익성 악화에 빠지면서 2월 초부터 법정관리가 진행 중이다. 위기의 기로에 서 있다는 점에서 GM이 처했던 상황과 다르지 않다. 쌍용차의 회생에도 인적 구조조정은 필수 전제조건이다. 쌍용차의 종업원 1인당 생산대수는 11.3대다. 현대차 29.6대, 기아차 34.9대와 비교해 생산성이 현저히 낮다. 그만큼 쌍용차의 잉여인력이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쌍용차노조는 GM노조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정리해고 대상자가 된 600여명의 노조원은 5월 22일부터 평택 공장을 점거한 채 파업을 강행하고 있다. 대치 상황 속에서 화염방사기 지게차, 볼트를 사용한 새총 등이 동원돼 임직원을 비롯한 사측과 노측 모두 큰 인명 피해를 입고 있다. 사측은 정리해고 대상자에게 영업부문 전직과 협력업체 취업을 약속하고, 이들 중 2012년까지 100명을 우선 채용하는 한편, 기존 희망퇴직자를 포함해 2014년까지 제한적으로 재고용하는 최종안을 노측에 제시했다. 하지만 노측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며 맞서고 있다. 이들은 공장 점거를 풀고 시설을 회사에 인도하라는 법원 결정도 무시했다.
민주노총 등 외부세력의 개입은 쌍용차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민주노총은 GM의 새 출발을 도운 UAW와는 딴판으로 쌍용차 정상화보다는 혼란 확대와 동원 투쟁에 매달리고 있다.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지난 16일 대의원대회를 열고 쌍용차의 공권력 투입을 규탄하는 확대간부 파업을 시작으로 22일 전 조합원 파업투쟁, 15일부터 31일까지 각 지부별 순환농성 공권력 투입에 따른 전면 파업 등 구체적인 투쟁을 결의했다. 16일에는 금속노조 조합원 3000여명이 공장 진입을 시도해 이 중 82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쌍용차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달 쌍용차 판매량은 내수 197대, 수출 20대 등 고작 217대에 그쳤다. 불안정한 회사상황에 소비자들도 쌍용차를 외면하고 있다. 협력 업체의 경우 10개사가 폐업하고, 13개사가 부도나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대로 가면 '파산’에 이를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파다하다. 쌍용차 직원 4000여명은 물론이고, 협력업체와 거래 업체를 포함해 20만 명의 생계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노조가 기대하는 것은 정부의 자금 지원이다. 쌍용차를 죽음 직전으로 몰면 정부가 구제하러 올 것이란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GM 방식의 구제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GM은 직원을 수만 명 감축하는 등 처절한 구조조정 뒤에야 공적 자금 지원이 이뤄졌다. 하지만 쌍용차는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의 자구 노력도 없이, 파업 과정에서의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국민 세금을 쏟아 붓는 공적 자금 투입을 동의할 국민들은 많지 않다.
위기 극복에는 누구에게나 양보와 희생이 따른다. 600여명의 정리해고자를 생각하면 안타깝다. 하지만 600여 명의 노조원의 생계가 중요한 만큼, 나머지 4000여 명의 직원들 또한 중요하다. 쌍용차와 관련한 다른 하청업체 직원들에게도 생계가 걸린 문제다. 쌍용차가 노측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사측이 정리해고 대상자들을 위한 충분한 협상안을 제시하고 있는데도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는 상황은 이해하기 어렵다. 계속해서 노조가 배 째라 식의 투쟁을 계속하게 되면 쌍용차 몰락은 목전에 다가올 것이 뻔하다.
20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 대한 법원의 강제집행이 노조 측의 저항으로 인해 실패했다. 조심스럽게 쌍용차가 청산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나돈다. 금속노조는 강제집행을 공권력 투입으로 규정하고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쌍용차 노조원 부인 자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부인 박 모씨는 최근 남편의 경찰 소환 통보, 사측 손해배상소송 제기, 공권력 투입 소식 등을 접하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노조의 감정이 격해져 평택공장은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고 있는 상황이다.
쌍용차 몰락은 사측, 노측 모두 원하는 것이 아니다. 쌍용차도 위기를 딛고 일어선 제2의 GM이 될 수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한 해결방안은 쌍용자동차 공장에 있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합의와 혁신이다. 쌍용차 사태가 노측, 사측, 그들의 가족 모두에게까지 물질적, 정신적 피해와 고통을 주고 있다. 이제라도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 연관된 모든 주체들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