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을 위한다는 일방적 구호 내세워 최저임금 인상 주장
상대방과 대화하고 이해하려는 의지는 없어
시민들에게 부담과 불편함을 느끼게 한 삭발 결의식
지난 18일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민주노총, 여성연맹, 진보연대 등 많은 단체가 참석한 가운데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최저임금 현실화 쟁취 공동기자회견 및 삭발 결의식'이 열렸다. 이 날 결의식 내내 참가자들은 '배고파서 못살겠다. 최저임금 인상하라.' '최저임금 인상하고 최저생활 보장하라.' '생활임금 쟁취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최저임금 삭감안을 철회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라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경기가 어려운 만큼 밑바닥 서민이 힘들어진다. 어려울수록 어려움을 끌어안고 베푸는 것이 부모 마음인데,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잘 사는 자식만 끌어안으려 하고 있다. 함께 힘을 모아 최저임금이 생계유지수준은 되도록 노력하자."는 취지발언으로 결의식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서민들 쓸 돈이 없으니 최저임금 높여라?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이 대통령은 경제대통령이라 불린다. 하지만 살리겠다는 경제는 부자경제일 뿐 서민경제는 아니다. 서민의 간 빼서 부자 살리겠다는 것은 오만방자함의 극치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내 놓던가, 최저임금을 높여라. 진보신당은 끝까지 싸우겠다."고 외쳤다. 이에 참가자들은 '이명박은 물러나고 최저임금 현실화하라!'라는 구호로 노 대표의 발언에 호응했다.
이곳에 참석한 한국진보연대, 사회진보연대 등 각 단체의 대표들 발언을 종합하면 "경제위기에 처해 있을수록 최저임금은 인상해야 한다. 자영업자들이 망하는 이유는 저소비 문화, 즉 서민들이 쓸 돈이 없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인상은 소비증가에 중요한 것이고 사회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것은 정당한 요구이다."였다. 결의식 내내, 최저임금 삭감이나 동결을 이야기하는 기업과 중소기업은 파렴치하고 양심 없는 이들로 그려졌다. 그 누구의 발언에도, 긴 선전물 문구에도, 기업과 중소기업은 어떤 입장인지,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서민들이 쓸 돈이 없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일방적인 외눈박이 요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제조업체 226곳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설문조사에서 최저임금을 현 수준으로 동결해야 한다는 응답이 54.5%, 삭감해야 한다는 답변이 24.1%로 나타났다. 또한 최저임금이 계속 오르는 데 따른 대책으로는 40%가 '신규채용 축소’를 꼽았고 비정규직 활용 확대(30.3%), 해고(9.2%) 등으로 답변이 나왔다. 단순히 서민들이 쓸 돈이 없어서 최저임금을 인상해야한다는 포퓰리즘식의 요구는 현재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인데도 무리한 주장을 늘어놓는 것은 분명 정당한 요구는 아니었다.
시민들의 눈으로 바라본 삭발 결의식, "불편함, 무서움"
기자회견 후, 4명의 대표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삭발 결의식이 계속됐다. 나란히 앉아 입술을 굳게 다물고 삭발하는 모습에 결의식 참가자들은 숙연해졌다. 하지만 지나가는 시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국회도서관을 방문하기 위해 결의식 현장을 지나가고 있다는 김정수(25)씨는 "잔잔하고 웅장한 노래를 틀어 놓고 삭발을 하고, 그런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무섭게 느껴진다."라고 삭발결의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했다. 결의식이 진행된 여의도 국회 앞에 있는 은행 직원들도 "고객들이 불편해하고 있다. 결의식을 피해 다른 길로 오셨다는 분들도 있었다. 머리카락을 잘라 자신들의 의지를 표현한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 생각도 한번쯤 해 주었으면 좋겠다."라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적절한 소비가 경제에 활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서민들이 쓸 돈이 없다고 해서 최저임금을 높이라는 일방통행식의 포퓰리즘식 요구는 옳지 않다. 이들은 "경제위기가 최저 임금자들의 책임인가?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맞서 투쟁하겠다."라고 하지만, 자신들의 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물론 경제위기가 최저 임금자들의 책임은 아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쓸 것이 아니라, 지금의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가려는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이진주 / 대학생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