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불황’, '존엄사 인정’, 'Ddos공격’, '미디어법 논쟁’, '쌍용자동차사태’ 까지 전문가 수준을 넘어서는 이슈들이 일상에 공존하고 있다. 이런 복합적 주제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회의감을 주기도 한다. 영국 소설가 엘리자베스 개스켈(Elizabeth Cleghorn Gaskell)의 작품 <메리 바턴(Mary Barton>에서 나타난 맨체스터 주민도 동일한 혼란을 경험한다. 이 소설은 봉건주의체제 붕괴와 산업화 과정동안 중상층과의 격차를 사실적 노동자의 삶속에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생활패턴을 통해 노동자 스스로 삶에 혼란을 느끼는 부분은 현재 언론보도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괴리감과 동일선을 걷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현 정부의 정책사업에 대한 논쟁도 눈여겨볼만 하다. 논쟁이 일어날 때마다 정책의 실효성 논의보다 '토목뉴틸’이란 '의도어’에 더욱 눈이 가는 건, 평범한 시민으로써는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여기에 현대국가의 특성상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 상황도 작용한다.
한국경제에는 급격한 경제성장이 자리 잡고 있다. '한강의 기적(漢江- 奇蹟)’을 이룬 한국경제의 힘은 'IMF경제위기’는 물론 '미국발 경제위기’ 의 침체상황에서도 빠른 회복의 저력을 보이고 있다. 한발 물러서 보면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국가와 기업에 호소(呼訴)한 적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자연히 앞에서 제시된 집단의 움직임의 주제들이 무조건적인 개인행동의 출발점이 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경제발전은 분명, 덩치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현재를 이끌어가기엔 집단은 한계가 있다. 이제는 집단 의존보다는 개인의 번영을 생각할 차례이다.
그럼, 이 같은 바람직한 발전을 위한 개인 중시를 어떻게 돌려야 하는가? 다행히도 이와 같은 물음에 교과서적 답변을 한 책이 있다. 이성적 사랑으로 잘 알려진 플라토닉러브(Platonic love)의 인용으로 유명한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Platon)은 『국가론』에서 구체적 국가를 위해 지도자의 조건을 설명한다. 현대사회에서도 국가 지도자의 조건은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특히, 플라톤은 절제와 금욕의 의미로 부인공유의 조항까지도 첨가한다.
지혜와 성실함 그리고 절제와 금욕적 삶이 가능한 계급이야말로 '이상국가(理想國家)’ 건설의 첨병이라 여겼다. 사실상 플라토닉 러브도 현대의 노인과 젊은 청년의 지식공유의 동성 사랑(同性愛)을 의미한다. 이상국가도 현실상황과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통해 플라톤이 설명하는 지도자의 조건이 분배를 강조하는 사상과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분배를 위한 완벽한 인간이 존재해야 하는데, 사실상 그건 불가능하다. 그럼 이를 지키고 실현할 체계가 요구될 것이다. 바로 시장의 힘이다. 이렇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사회를 과거로 되돌릴 수 없듯이 멀쩡한 체계를 무조건적인 부정에도 한계가 있다. 체제를 바꾸기 보다는 그 안에서 다양한 발전을 모색해야만 한다.
중요한 사실은 일상에서 접하는 나와 동떨어진 사회이슈들이 내가 적응하지 못한 결과물이 아니란 점이다. 국가의 경우도 자국민에게 대한 세금부과에 있어 국제적인 합의가 필요할 만큼 세계화되고 복잡한 체계로 작동되고 있다. 하물며 개인이 모든 걸 참여하지 못한다고 성급히 동조하고 배척하는 태도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뿐이다. 참여도 좋다. 변화도 좋다. 그 전에 자신에게 맞는 현재 이루어지는 주류의 변화에도 한번쯤은 귀 기울여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