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합법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헌법기관의 활동을 통한 정치보다 대중의 직접적인 정치참여가 헌법적인 절차가 무시되더라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을 종종 접하게 된다.
이러한 입장에 부합하는 사상가 중에 루소가 있다. 그는 민주주의를 일반의지(General Will)에 의한 정치로 규정한다. 일반의지란 일반 대중들의 일치하는 의견을 말한다. 그런데 이 일반의지가 형성되는 것은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의 '상식’에 입각한 판단을 의미하였다. 만약 이에 수긍하지 않는 개인이나 적합하지 않은 법이 있다고 한다면 일반의지가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루소는 공동체가 있기에 개인의 권리와 법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입장과 부합하는 면은 성리학자 이이(李珥)의 사상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기일원론(氣一原論)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민중(氣)만이 정치적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왕에게 언로를 열어줄 것을 건의하기도 하였고, 특히 사간원, 사헌부 등의 활동을 강화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이는 민중의 일치된 여론을 공론(公論)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표현하였고, 바로 이 공론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황은 서인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세勢에 의한 정치’로 합법적인 권한을 무시하는 정치라고 비판한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대중의 일치된 의견에 따라 이루어지는 정치라고 규정하는 것이 과연 합당할까? 얼핏 보기에 루소와 이이의 주장은 민주주의를 신장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바람직한 사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적 결과를 살펴보면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려워진다.
먼저 프랑스를 살펴보자. 루소의 사상을 정치 이념으로 채택하였던 자코뱅당은 프랑스대혁명의 기간에 사상 유래가 없는 폭압정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부르주아와 농민의 연합에 의해서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의 초기의 자유주의적인 개혁 방향이, 후반에 자코뱅당에 의해서 공포정치로 전환되고 말았다.
또한 이이의 사상을 계승한 서인들은 인조반정을 통해서 정권을 획득하게 되는데, 그들은 민중의 다양한 의견을 허용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의견이 곧 민중의 의견이라는 독선으로 조선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이러한 의외의 결과에 대한 분석으로 토크빌의 견해를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루소나 이이와 반대로 다수의 일치된 의견 혹은 '다수의 횡포’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말한다. 프랑스는 '자유의 쟁취’라는 목적으로 대혁명을 일으키지만, 민주주의가 갖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제제하려는’ 평등주의적 속성으로 인하여 자유를 포기하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결국 프랑스는 독제정치의 길로 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즉 다수의 일치된 의견인 공론(公論)이나 일반의지(General Will)에 의한 정치가 대중의 평등주의적 속성으로 인하여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정치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토크빌의 이야기를 더 들어 보자.
그는 영국이 평민과의 소통 의지와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 귀족의 역할로 인해서 민주주의가 평등주의에 빠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미국은 민주주의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귀족은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발달되지 않은 중앙집권제도와 끊임없이 서부로 확장하는 풍부한 영토(새로운 이주민들에게 끊임없는 부의 원천이 되었다), 그리고 사법관의 역할, 정치와 분리된 종교의 헌신적인 노력 등으로 인하여 다수의 폭정이 완화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후반 여러 사람들의 정치적 참여로 법과 제도적인 측면에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이제 우리는 법과 제도를 존중하는 가운데,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합법적으로 개선하고, 민주주의를 좀 더 발전시키기 위한 각 개인들의 다른 관점에서의 많은 참여와 헌신,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