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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26 성리학과 집단주의


성리학은 초월적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내재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우주를 상정하였다. 이러한 내재론(內在論)이 우리의 삶에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내재론의 입장에서 철학을 전개한 하이데거와 스피노자의 사상을 통해서 성리학의 내재론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자.

하이데거를 흔히 존재의 철학자라고 부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존재’라는 단어는 우리가 오감을 통해서 접하는 감각적 대상이 '실제로 존재한다.’(實存)는 의미를 갖고 있다. 플라톤은 감각적 대상이 실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오직 초월적 이데아만이 실존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하이데거는 모든 존재가 실존한다고 함으로써 플라톤의 철학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하이데거는 “신을 최상의 가치로서 추앙할 경우, 이러한 태도는 세인들에게는 마치 신을 극진히 섬기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이러한 태도야말로 신에 대한 가장 심한 모욕이며 신을 살해하는 최후의 일격이다”라는 말을 통해 초월론을 비판한다.

그는 진리의 성스러운 빛은 언제나 인간존재의 때 묻지 않은 단순 소박한 삶의 심연 혹은 청정한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밝히려는 노력으로 신이 새롭게 도래할 가능성이 간직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면서 내재론을 옹호한다.

그렇다면 그의 내재론은 어떤 방식으로 집단주의를 강화하는 논리가 될까?

그는 모든 존재자들이 하나의 존재 전체를 이루어 빛을 발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존재의 경험’이란 하늘을 위로 하고 대지의 품안에서 태어난 인간이 하늘과 대지 사이에 존재하는 산하(山河)와 다른 인간들과 동물, 식물 그리고 돌과의 친교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하이데거의 '존재’라는 개념은 개인과 개인이 분리된 상태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이 연결되어 있는 상태,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 상태, 즉 공동체적이고 집단주의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긍정적으로 보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처럼 내재론이 집단주의로 확장되는 경우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모든 개별적인 존재들 속에는 동일한 본성, 혹은 존재가 들어가 있고 동일한 존재를 통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실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주장하고, 인간도 하나의 개인이 아닌 집단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성리학의 핵심적인 주장인 氣(물질)속에 理(신적인 법칙)이 있다고 하는 주장은 하이데거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가 실존한다.’는 주장과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이와 한 스님이 금강산에서 나눈 대화에서 스님이 '이 세상에 실존(實存)하는 것은 없다’고 주장하자 이이는 '새가 날아가고, 물고기가 해엄 친다.’고 말하면서 존재가 실존(實存)함을 주장한다.

이렇게 동일한 입장에 있음을 보았을 때 성리학 또한 하이데거,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이 집단주의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형조는 성리학이 공동체주의를 함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주 안에 신적인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자연 현상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신적인 관계와 연결’이 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재론이 집단주의로 연결되는 또 다른 논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스피노자는 철학자 중 대표적인 내재론자이다. 그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과정을 신과 인간의 자유의지적 행위의 결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이고 필연적인 법칙의 결과라고 재해석한다. 스피노자는 절대 존재(신)를 인간 존재 안에 용해시켰고, 절대 존재를 인간에 내재적이게 만듦으로써, 기독교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스피노자는 내재론의 입장에서 논의를 진행시키면서 최고 권력은 각각의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으로 인도되는 다중(多衆)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즉 각 개인에게는 동일한 지적인 본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정신에 의해 인도되는 다중에 의한 지배가 가능하다고 그는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입장은 성리학에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동일한 도덕적 판단 기준(理)이 존재한다는 가정과 일치한다. 성리학에서 보기에 집단의 여론은 일치할 수 있고, 이러한 일치된 의견(公論)에 따라 통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성리학은 보았던 것이다.

이렇듯 내재론은 각각의 개인에게 동일한 도덕 판단 기준이 존재한다고 가정함으로써 집단의 판단이 일치할 수 있다고 보았고, 결국 집단주의에 의한 정치를 정당화하였다.

성리학의 내재론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강조하고, 인간의 '동일한 판단 기준’을 가정함으로써 집단주의를 정당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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